고든 머레이가 제안하는 ‘수퍼카 순수령’ GORDON MURRAY AUTOMOTIVE T.50

고든 머레이가 제안하는 ‘수퍼카 순수령’

GORDON MURRAY AUTOMOTIVE T.50



 

F1 레이싱카 설계자로 명성을 높은 고든 머레이가 자동차 제작자가 되었다. T.50은 그가 맥라렌 시절 완성했던 수퍼카 F1처럼 미드십 V12에 운전자가 중앙에 앉는 3인승 레이아웃. 차체 무게를 1t 아래로 줄였으며, 코스워스가 제작한 V12 4.0L 663마력 엔진은 순수한 감각을 위해 터보나 모터 어시스트가 없고 고회전과 램 흡기에 의지해 최대 700마력을 뽑아낸다. 공력 시스템의 핵심인 꽁무니의 고성능 전동팬은 머레이의 작품인 브라밤 BT46B 팬카를 떠올리게 한다.



고든 머레이 오리지널의 첫 수퍼카 T.50은 2021년 생산을 시작한다



화려함보다는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설계되었다



버터플라이 도어와 보디 실루엣은 멕라렌 F1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자동차 제작에 발 담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기 이름을 붙인 차를 꿈꾸어 볼 것이다.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 파가니, 코닉세그 같은 이름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할 듯하다. F1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한 고든 머레이가 바로 그 주인공. 전설적인 수퍼카 맥라렌 F1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2007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컨설팅 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T.50을 발표하며 수퍼카 시장에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고든 머레이는 2007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F1 70년 역사상 최고의 기술 혁신가'라는 영예를 얻은 고든 머레이


F1의 살아있는 전설, 고든 머레이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유명한 인물은 대게 드라이버다. 감독과 엔지니어는 어지간한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 그런 점에서 최근 F1 70주년을 맞아 팬 참여로 이루어진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투표는 눈여겨볼 만하다. 투표는 드라이버와 팀 보스, 테크니컬 이노베이터, 게임 체인저 네 부문으로 이루어져 마이클 슈마허가 F1 역사상 최고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테크니컬 이노베이터 부문은 접전이었다. 에이드리언 뉴이(레드불)과 고든 머레이가 맞붙었는데,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든 머레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브라밤과 맥라렌을 거치며 수많은 걸작을 만들었기에 전설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T.50의 단면도 렌더링. 전동팬을 통해 그라운드 이펙트를 극대화한다


1991년부터 F1에서 승용차 부문인 맥라렌 카즈로 부서를 옮긴 머레이는 창업자 브루스 맥라렌이 이루지 못했던(1970년 사고로 사망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로용 수퍼카 개발에 착수했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맥라렌 수퍼카 F1이다. 강력한 성능에 GT카로서의 편의성을 겸비한 설계, 독특한 3인승 레이아웃 등 페라리, 람보르기니에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단번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엉덩이에 자리잡은 400mm 팬이 강력한 다운포스를 만들어 낸다


브라밤 팬카를 연상시키는 공력 디자인 


2004년 맥라렌을 떠난 머레이는 2007년 고든 머레이 디자인을 설립하고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맥라렌과의 관계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이번에 선보인 T.50은 누가 보아도 맥라렌 F1의 후계자다. 운전석을 중앙에 둔 3인승 레이아웃과 버터플라이 도어, 12기통 미드십 레이아웃 등 맥라렌 F1의 DNA가 진하게 느껴진다. 물론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고, 기술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에는 BMW M에서 S70/2 엔진을 제공받았지만 이번에는 레이싱 엔진 스페셜리스트 코스워스의 도움을 받아 V12 4.0L GMA 엔진을 개발하고 차체 무게는 1t 아래로 줄였다. 100대만 생산되는 T.50에는 236만 파운드(36억6,000만원)의 가격표가 붙었다. 



브라밤 BT 46B를 연상시키는 후방팬. 당시보다 기술적으로 한층 고도화되었다


외형은 매끄러운 유선형 라인과 커다란 캐빈룸, 버터플라이 도어와 리어팬 덕분에 항공기를 연상시킨다. 공력 특성을 우선한 탓인지 돌출물이나 공기 입출구를 최소화하고 에어 스플리터나 윙렛 같은 공력 부가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기능적인 접근에 우선했다는 인상. 하지만 실제로는 팬과 리어윙 등 고도의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 기술이 투입되었다. 제트 엔진 노즐처럼 보이는 400mm 팬은 1998년 스웨덴 GP에서 충격적으로 데뷔했던 브라밤 BT46B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인다. 당시에는 매우 단순하고 원시적인 아이디어였지만 T.50의 팬은 가동식 리어윙과 함께 상황에 따라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오토/하이 다운포스/스트림라인/브레이킹/테스트/V-맥스 부스트 등 6가지 작동모드가 있다. 하이 다운포스에서는 다운포스를 평소보다 50% 높여주며 스트림라인은 마치 롱테일 보디처럼 공기 흐름을 유도해 공기저항을 줄인다. V-맥스 부스트는 최고속도 도전용. 테스트 모드는 정지 상태에서 팬을 작동시키는 용도다. 



멕라렌 F1과 닮았으면서도 현대화된 운전석.

전자식 디스플레이와 사이드 미러를 대신하는 모니터가 보인다



곳곳에 경량화의 흔적이 보인다. 시프트 레버는 티타늄으로 만들었다


맥라렌 F1의 3인승 레이아웃을 계승


도어는 버터플라이 방식(다이히드럴 도어)으로 넓게 열려 접근성이 좋다. 시트 레이아웃은 운전석을 중앙에 두고 보조석 두 개가 좌우 뒤에 배치된 변칙적인 3인승. 운전석만 형광색으로 강조해 밖에서 보면 1인승처럼 보인다. 전반적인 형태는 맥라렌 F1을 살짝 다듬은 느낌이다. 물론 다른 점도 많다. 사이드 미러를 카메라로 대신해 대시보드 좌우에 작은 모니터가 달렸고, 인스트루먼트 클러스터는 대구경 아날로그 타코미터 좌우에 디지털 모니터로 구성했다. 그 좌우에 사용 빈도가 높은 라이트와 와이퍼, 공조 등의 로터리 스위치를 모았다. 알루미늄과 티타늄을 깎아 만든 페달은 구멍을 뻥뻥 뚫어 무게를 덜어냈으며 운전석 오른쪽에서 길게 솟아오른 시프트 레버도 티타늄제. 시프트 레버 주변에는 시동 버튼과 인포테인먼트 조작 노브, 드라이브 모드 스위치 등을 배열했다. 뒤쪽 걸윙 도어는 엔진룸과 화물공간용이다. 엔진룸 좌우에 90L씩 짐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탑승자가 2명 미만일 경우 조수석에 맞추어 제작된 여행용 가방으로 288L의 짐을 실을 수 있다. 영국 아캄(Arcam)제 700W 10 스피커 오디오 시스템은 경량화라는 T.50의 성격에 맞게 전체 시스템 무게가 3.9kg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연결을 위한 안드로이드 오토/애플 카플레이는 물론 내비게이션도 달렸다. 



운전석만 다른 색상이어서 마치 1인승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스워스가 개발한 V12 4.0L 엔진은 V-맥스 모드에서 최대 700마력을 낸다


코스워스가 개발한 V12 4.0L 엔진


엔진은 코스워스에서 담당했다. 코스워스는 영국이 자랑하는 레이싱 엔진 전문 회사로 1958년 창업해 F1과 르망은 물론 WRC와 GT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활약해 왔다. 최근 애스턴마틴과 레드불이 공동 개발한 수퍼카 발키리 엔진(V12 6.5L)도 그들 작품. 

T.50에 탑재된 자연흡기 V12 4.0L는 양산 엔진 중 가장 높은 12,100rpm 회전이 가능하다. 최고출력 663마력, 최대토크는 47.7kg·m다. GT 모드에서는 편안한 운전을 위해 600마력, 최고회전수는 9,500rpm으로 제한된다. 반대로 V맥스 모드에서는 48V 스타터/제너레이터를 꺼서 부하를 최소화하고 램 흡기까지 힘을 더해 700마력을 쥐어 짜낸다. 머레이는 최대한 매끄럽고 자연스런 필링을 원했기 때문에 터보나 모터 어시스트를 배제했다. 제너레이터, 컴프레서 등을 구동하는 벨트도 없애고 밸브 트레인은 기어 구동식. X트랙의 시퀸셜 6단 변속기는 5단까지 크로스레이쇼 구성이고 6단만 기어비를 낮추어 크루징 용도로 세팅했다. 



조작계를 손 가까이 최대한 모아놓았다


엔진은 178kg으로 매우 가볍다. 기어박스도 80kg 남짓. 게다가 초경량 카본 섀시에 엔진/기어박스를 차체 구조물로 활용하는 방식이라 레이싱카에 다름 아니다. 카본으로 만든 모노코크와 보디 패널을 모두 합해도 150kg을 넘지 않으며 3인용 시트는 겨우 13kg이다. 이렇게 해서 얻어낸 차중 986kg는 동급 수퍼카와 비교해 30% 가량 가볍다. 

앞뒤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은 부가적인 전자장비나 유압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다. 스티어링 역시 간결한 랙 앤드 피니언. 주차장 등 저속 주행용 파워 어시스트(LSPA)를 제외하고 일반 주행 상황에서는 논 어시스트라 그야말로 레이싱카 수준의 직접적이고도 순수한 감각을 제공한다. 타이어는 미쉐린의 파일럿 스포트4 S로 앞 19인치, 뒤 20인치. 단조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서스펜션 암은 매우 가벼우며 브레이크 역시 브렘보의 카본세라믹 디스크와 알루미늄 캘리퍼의 구성이다. 



운전석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좌석을 더한 3인승 레이아웃이다



페달까지도 꼼꼼히 무게를 덜어낸 결과 1t 아래로 경량화에 성공했다


고든 머레이가 제안하는 아날로그 수퍼카


고든 머레이는 이 차를 소개하면서 “지난 30년간 기술과 시스템이 발전함으로서 최고의 아날로그 드라이버즈 카를 디자인할 때가 되었다. 2022년에 내놓을 이 차가 다른 어떤 메이커도 만들 수 없는 물건이라 믿는다. 영국산 수퍼카를 내놓는 지금이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다.”라고 밝혔다. 각종 장비와 시스템을 얹느라 무게가 늘어나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출력을 높이고 다시 무거워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과감히 아날로그적 접근을 선택한 고든 머레이. 극도의 경량화 사상을 보고 있자면 로터스 창업자 콜린 채프먼을 떠올리게 된다. 남아프리카 태생인 머레이는(부모님은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다) 1969년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로터스에서 일자리를 얻고자 했었다. 결과적으로 브라밤에 입사하기는 했지만 위대한 선배 채프먼의 뒤를 잇는 뛰어난 자동차 엔지니어로 인정받고 있다. 고든 머레이가 선언한 ‘수퍼카 순수령’은 내연기관의 불씨가 꺼져가는 이 시대에 과연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F1 금단의 기술을 양산차로

T.50의 엉덩이에 달린 직경 40mm 팬을 보면 누구나 브라밤 BT46B를 떠올릴 것이다. 1978년 스웨덴 그랑프리에 등장해 충격과 공포를 몰고 왔던 일명 ‘팬카’ 말이다. 당시는 한해 전 로터스가 선보인 그라운드 이팩트 디자인이 F1에 큰 충격파를 몰고 온 시기. 차체 바닥을 거대한 벤추리관 처럼 공기가 흐르도록 만들어 기압차를 통해 자연스레 다운포스를 얻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브라밤의 고든 머레이는 더욱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78년 시즌용 BT46은 그 자체로 카본 브레이크와 디지털 디스플레이, 데이터 로거 등 혁신적인 차였다. 그런데 제8전 스웨덴 GP에서 뒤에 거대한 팬을 달고 등장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크고 무거운 알파로메오 수평대향 12기통 엔진 때문에 그라운드 이펙트 형상을 제대로 도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팬을 달아 바닥 공기를 강제로 뽑아내는 방식을 선택한 것. 미국 체퍼렐이 1970년 선보였던 캔암 경주차 2J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BT46B는 등장과 함께 우승을 차지하며 라이벌들을 경악시켰다. 당시 브라밤은 이 팬이 냉각용도라고 주장했고 해당 시즌 사용이 가능하다는 판결까지 받았다. 하지만 경기 직후 재심사를 통해 이후 경기부터는 출전이 불가능해졌다. BT46B의 리어팬은 동력계에 직접 연결되어 팬 회전수를 따로 조절할 수 없는 단순한 구조였다. 반면 T.50은 전동팬이어서 상황과 선택 모드에 따라 작동한다. 고든 머레이는 강력한 팬을 사용하기 위해 48V 제너레이터를 도입했다. 


글 이수진 편집장 사진 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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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