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WD 자동차의 역사이자 전설, 김안남 회장과 M151 케네디 지프

한국 4WD 자동차의 역사이자 전설
김안남 회장과 M151 케네디 지프


못 말리는 지프 광(狂), 올해 팔순인 한국 4WD 연맹 김안남 회장은 대한민국 4WD 자동차 역사의 산증인이자 자동차 동호인들에게는 전설이다. 국내 최초의 오프로드 레이스는 물론 자동차 클럽 문화의 시작과 함께한 그는 인명구조를 염두에 두고 M151 케네디 지프에 특수 부력 장치를 달아 한강을 건너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프로 대동단결’을 염원하는 김회장과 그를 이어 가업을 받은 김재호 사장 부자(父子)를 워크숍 서대문지프에서 만났다.



올해 팔순의 김안남 회장과 M151A2 ‘케네디 지프’


지프는 김회장의 첫사랑이자 로망이요 분신(分身)이다. 6.25 무렵 그의 나이 열 살 때, 험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지프를 동경하다가 어느날 미군이 윌리스 지프를 태워준 게 인연이 됐다. 그의 첫 차는 기아 마스터의 삼륜차 T600이었지만 어린 아들을 태워 바다에 가려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진입을 저지당한 뒤론 줄곧 지프였다. 이후 지프형 4WD 차만 여러 대를 바꿔 탔다. 지금까지 아찔한 사고와 기계 고장을 숱하게 겪었지만 그의 열정을 꺾진 못했다. 오히려 그런 경험이 동료들 간에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의주로에서 고양시로 옮긴 서대문지프. 두 대의 케네디 지프가 입구를 지킨다


최초의 모임과 단체의 시작은 ‘봉사’

89년 최초로 오프로드 동호회 코리안스 클럽을 만들어 전국의 오프로드를 10여 년간 방방곡곡 훑고 다닌 그가 사단법인 한국 4WD 연맹까지 조직한 동기는 단순 명료하다. 한때 국방색, 검은색 지프는 절대 권력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시대가 바뀐 후에도 4WD 동호인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게다가 시골 사람들이 먼지 풀풀 날리며 떼 지어 찾아온 낯선 이들을 좋게 봐줄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4WD 차를 타고 즐기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바꿀 겸 동료들과 힘을 합쳐 90년대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김안남 회장의 데일리카 랭글러 루비콘(JK). 비키니 탑도 역시 그의 작업물이다


처음에는 생필품 전달 정도였지만 공무원과 의료계, 기술직을 비롯한 다양한 직업의 회원들이 분야별 나눌 것을 찾아 행동에 옮겼다. 험지에 있는 장애인, 고아와 독거노인, 불우이웃을 찾아가 의약품과 생필품을 전달하고 아이들의 친구가 돼주거나 농기구를 고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봉사 초기에는 찾아가겠다는 말에 냉담했지만 나중엔 먼저 따뜻한 밥을 차려놓고 회원들을 반길 정도로 사람들의 달라진 인식에 뿌듯함을 느꼈다. 


한국 4X4 클럽, 이후 사단법인 한국 4WD 연맹을 결성해 회장직을 맡아 규모를 키웠다. 6.25에 참전해 이 나라를 구한 유엔 연합군에 대한 특별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도 김회장에게는 매우 중요한 행사다. 어린 시절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도의 날, 광복절 및 주한미군 사령부 창설 기념일 등 국내외 참전용사들을 기념하는 날 케네디 지프를 타고 회원들과 카퍼레이드에 빼놓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브리징 플레이트-군용차의 무게와 분류 등급을 표시하는 사인-도 재현돼있다


인명구조를 위해 만든 지프로 한강을 건너다

김회장은 일본과 교류하며 다양한 튜닝과 이를 포용하는 제도, 인식등 그들의 4WD 자동차 문화를 보고 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한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 부품 규제 완화가 이뤄져, 음지에 있던 자동차 튜닝이 규정만 충족시키면 개조할 수있었다. 그는 케네디 지프에 800만원을 들여 특수 부력 장치를 더하고 드라이브 샤프트에 프로펠러를 달아 한강을 횡단하는 수륙양용 지프로 탈바꿈시켰다. 당시 4WD 문화가 한참 앞선 일본조차도 차로 강을 건너간 사람이 없어서 김회장의 도전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갔다.


그런데 그 겨울, 김회장은 보란 듯이 꽁꽁 얼어붙은 한강을 건넜다. 이때 그의 나이 예순여섯. 다소 무모한 도전을 한 이유를 물어보니, 잦은 자연재해가 있는 일본에서 4WD 유저들이 인명구조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에 깊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명구조 상황을 염두에 두어 수륙양용 케네디 지프가 탄생한 셈이다. 얼마 전 지방에 홍수가 났을 때 오프로더를 모는 후배들이 급류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출해낸 미담을 듣고 남모를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바라왔던 ‘약자를 돕는 문화’가 정착된 것이 대견해서다.



간결한 M151A2 케네디 지프의 실내공간


M151A2, A.k.a.‘케네디 지프’

현재 김회장의 컬렉션인 ‘케네디 지프’의 정식 명칭은 M151A2 1/4톤 MUTT(군용 다용도 전술 트럭). ‘윌리스 지프’ M38과 M38A1의 후속으로 최종 승인권자 존 F. 케네디의 이름을 딴 별명이 생겼다. 월남전에서 맹활약했으며 1980년대 말 M998 ‘험비’로 세대교체 되기까지 세계적으로 10만대 이상 생산된 베스트셀러다. 이 차는 1971년 이후 AM 제네럴이 생산한 것인데 전기형이 고속에서 잘 뒤집히는 이슈를 보완해뒤 서스펜션 쪽 재설계를 거쳐 세미 트레일링 암으로 바꾼 모델이다.


최고출력 71마력, 최대토크 17.75kg·m를 내는 직렬 4기통 2.3L 카뷰레터 가솔린 엔진과 짧은 기어비의 4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했다. 평상시 뒷바퀴를 굴리며 파트타임 4WD 트랜스퍼 케이스가 달렸다. 공차중량은약 1,100kg, 마력당 하중은 15.4kg. 전술차량답게 기능적이고 극도로 간결하지만 ‘밀덕’이라면 한참 눈을 못 뗄 만큼 강렬한 디자인이다. 오래 세워둬 카뷰레터 메인 노즐이 기름을 빨아들기까지 마른 기침을 뱉더니 시동이 터지고 금세 아이들링이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려도 쿨럭이는 기색이 없고 아슬아슬한 잔 모굴에서도 하체가 기민하다. 카퍼레이드 속도에 최적화된 김회장의 베테랑 클러치 워크가 한몫 거든 게분명하지만 역시 지프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차로 도로에 나서면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사진 촬영은 흔한 반응이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한참 바라보며 감상에 잠기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2006년 특수 부력 장치를 달고 한강을 건넌 바로 그 케네디 지프


그의 끝없는 지프 예찬론

예나 지금이나 진성 지프 마니아인 그는 요즘 데일리카로 3세대 랭글러 루비콘(이하 JK) 소프트톱을 탄다. 투박하지만 간결한 지프의 전통에 강한 매력을 느끼는 골수팬답게 JK에 편안함을 느낀다. 작년엔 신형 4세대 랭글러(JL)의 런칭 광고 편에 윌리스 MB 지프를 타고 출연해 그가 전달할 수 있는 지프의 헤리티지와 특징을 강렬하고 담백하게 어필하기도 했다. 지프는 승차감이 별로 좋진 않지만 튼튼한 프레임 보디라서 오래 타도 안전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족할뿐 아니라 주변에도 적극 권한다고 한다. 그가 20년 넘게 이끌어온 4WD 자동차 동호회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또한 남다르다. 지프 마니아라면 개성이 강해 언뜻 지독한 괴짜처럼 보이지만 내면에 끈끈한 정과 의리가 있고 협동심이 강한 특징이 있다고 강조한다. 운행 중 낯선 이를 만나도 길에서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고서 선뜻 도움을 주고, 일행이 낙오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고쳐 복귀할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심성을 그는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올드카를 모조리 없애는 건 역사를 없애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하는 김안남 회장


2대(代)째 이어지는 가업, 서대문지프

김회장이 노구를 이끌고 홀로 작업하는 것이 힘에 부쳐 때마침 아버지를 걱정하던 아들을 불러들였다. 해양지질을 전공한 아들 김재호 사장은 토목회사에서 일을 하다 서대문지프를 이어받은 케이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작업장은 물론 4WD 연맹과 오프로드 경기 관련 온갖 일을 도맡아 했던 김사장은 아버지를 멀리서 걱정하기보단 가까이서 보필하는 쪽이 낫다고 판단해 가업(家業)을 물려받았다. 제일 걱정되었던 일은 한겨울 케네디 지프로 한강을 건널 때였다고. 김사장은 어릴 때부터 틈틈이 일을 거들며 배워 익숙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하신 아버지와 일하는 점이 애로사항이라고 털어놓는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기운차게 움직이는 M151A2 케네디 지프


서대문지프 매장은 지프만 즐비할 줄 알았지만 소프트톱이라면 차종을 가리지 않고 대기 중이다. 물론 4WD용 지붕 작업이 주력이지만, 컨버터블 탑 제작 및 수선과 교체 작업 의뢰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소프트톱은 오래 쓰다 보면 주변 부품 파손 확률이 높아진다. 정품톱 어셈블리를 통째로 교환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많은 비용이 들고, 단종된 경우 부품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도 이곳은 웬만해서는 최상의 솔루션으로 수리를 해준다.



케네디 지프는 지프의 ‘Timeless Design’을 말해주는 좋은 예다


배출가스 등급제는 반드시 보완해야

최근 케네디 지프도 5등급 차로 분류됐다. 그는 “물론 나라에서 필요하니까 내린 조치겠지만 굳이 올드카 운행까지 막아야 했나. 잘 관리된 차까지 싸잡아 묶는 건 애지중지하는 차를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처사나 다름없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사실 4WD 자동차는 대부분이 올드카다. 마니아 수요에 부응하는 국산 오프로더 4WD 자동차의 대가 끊긴 지는 이미 오래됐다. 워낙에 시장이 좁고 대체재도 없으니 오너가 올드카를 포기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실제로 그의 주변에는 많은 비용과 정성을 들여 애지중지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같이 오프로딩을 대비해 믿을만한 상태를 유지하며 매연 배출이나 고장 등 남에게 피해 주는 일 또한 원치 않기에 자가 정비와 운행 전 점검을 철저히 한다. 어차피 올드카를 매일같이 타는 사람도 거의 없을뿐더러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이런 차를 없애는 건 문화적 후퇴가 아닐까.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첫 양산차 시발(始發)은 군용 윌리스 지프, 신진 지프는 민수용 지프(CJ-5)가 베이스다. 그런데 신진-거화-동화-쌍용 코란도 지프의 계보는 지금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다. 국산 오프로더 바람을 일으킨 갤로퍼와 뉴 코란도/무쏘는 어떤가?


무분별한 구형차를 죽이기는 이제 멈춰야한다. 외국은 올드카를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마련해두고 있다. 우리도 메이커뿐 아니라 오너들이 이런 개체를 아껴 탈 수 있도록 속히 예외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지프와 함께 한 평생을 걸어온 김 회장 부자가 함께, 나란히


김회장이 지금까지 지프를 꾸준히 타고 이와 관련된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개성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다. 단체를 운영하고 여러 사람들을 모아 예전의 그처럼 구심점이 될 만한 사람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국내에서 좋은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고 뭉쳐야만 발전이 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그의 꿈은 국제 오프로드 레이스를 국내에서 개최하는 것이다. 92년 용인과 99년 몽산포에서 4WD 장애물 레이스가 있었다. 당시 열악한 여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보다 성숙한 자동차 문화가 정착했으니 앞으로 분명 더 나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아버지에 이어 가업을 이어가는 서대문지프 김재호 사장


요즘 4WD 자동차가 많아지고 시대가 바뀌어 오너의 개인주의 성향도 강해졌다. 그래도 옛날처럼 차 막힌다고 인도를 서슴지 않고 넘어 제 갈 길 간다든지, 다니지 말라는 임도나 사유지를 이리저리 파헤치고 다니는 몰상식한 오너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돼 다행이다.


지금도 지프를 타고 도로에 나가면 주위 운전자들은 이내 그에게 호기심과 경의에 찬 시선으로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든다. 김회장은 오늘도 멋스럽게 지프를 타며 도로에서 바람직한 매너를 갖춘 진짜 지프 마니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글·사진 심세종 칼럼니스트
(주)자동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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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우 기자 다른기사보기